브라질 커피, 팔헤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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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scuit

브라질 커피의 탄생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때 프랑스에서 커피나무를 가져온 데클리외 대위가 남아메리카의 커피 역사를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 전설 같은 이야기에는 숨겨진 비밀과 재미있는 사건들로 가득했다.

1. 커피를 지키기 위한 전쟁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미 남미 위쪽 적도 근처의 가이아나의 수리남 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로 옆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이아나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서로를 질투하며 커피 열매의 종자를 이웃 나라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법령은 별로 효력이 없었다. 이미 가이아나 전역에서 커피 나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커피가 탄생하기전 커피생산지,  기이아나와 수리남의 지도

    2. 브라질에서 온 포르투갈 장교 팔헤타의 등장

      이 금지령이 무색해진 상황에서, 1727년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람들은 경계 문제로 다투면서 브라질 출신의 포르투갈 청년 장교, 팔헤타를 불러 경계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파리에서 온 공무원 출신으로, 그의 임무는 단순히 두 나라의 경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커피 원두를 구해오라는 브라질 국가의 명을 받아 온 것이었다.

      매력적으로 잘생긴 팔헤타는 프랑스 총독의 부인을 매혹적인 음악으로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축제가 벌어지는 가운데,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이 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총독의 부인은 팔헤타에게 향기로운 큰 꽃다발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잘생긴 팔헤타의 유혹에 넘어간 총독 부인이 준비한 잘 익은 커피 열매 한 주먹이 들어 있었다.

      3. 밀림의 산불, 로하의 시작

        팔헤타는 그 선물을 들고 재빨리 배를 타고 브라질로 귀국했고, 아마존 강 어귀로 갔다. 그 후 그곳에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고, 금방 멀리 퍼져 나갔다. 브라질은 생산국으로서 항상 1위 자리를 고수하게 되었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커피 재배에 적합한 토지, 그리고 정부의 협조, 노동력의 해결 덕분이었다.

        브라질의 식민지 이주민들과 그들의 노예들은 원시림 안으로 뚫고 들어가 포이헤라고 부르는 곡괭이나 손도끼로 거대한 나무들, 그리고 산 것과 죽은 것을 함께 묶어버리는 팔뚝 굵기의 덩굴들을 쓰러뜨렸다.

        몇 미터 높이로 쌓인 나무 쓰레기들은 앵무새처럼 알록달록한 꽃들과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 난초들 때문에 금속성 색깔로 물들어 갔다.

        브라질 산불 로하의 이미지

        도벌된 나무들이 충분히 태양의 불에 달구어진 후, 이제 숲의 거대한 화재, 즉 로하가 시작되었다. 바람구멍이 열린 자리에다 사람들은 불씨를 던져 넣었다.

        그 불길은 쓰러뜨린 모든 것, 모든 나무둥지, 모든 장작을 집어 삼켰다. 다만 흑청색이고 불에 타지 않기 때문에 인디언들이 쇠나무라고 불렀던 특별한 나무만이 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4. 커피나무의 번성

          그 재는 비료가가 되었고, 모든 토지 중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에 커피나무가 파종되었다. 커피나무는 자라고 또 자라났으며, 얼마 안 있어 가까운 이웃의 숲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그 이웃의 밀림이 사라지고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위도 상 20도 이상의 지역을 가로질러 북에서 남으로 화전민의 산불 로하가 집어삼켰고 그 자리에는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5. 테라 록사의 마법

            커피가 가장 수확성이 높은 땅은 상파울루의 고원지대였다. 사람들은 그 땅이 초콜릿 색깔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테라 록사(Terra roxa), 즉 붉은 땅이라고 불렀다.

            해가 질 때면 그 토지는 거기서 반사되는 보랏빛을 띠었다. 매우 많은 질소, 인산, 석회, 탄산칼륨을 함유한 부식질의 테라 록사는 오래되지 않은 화산암에서 생성되었다.

            6. 브라질의 노동력 확보의 비밀

              브라질에서는 1888년까지 노예제도가 존속했다. 1930년대에도 항구도시 바하아를 걷노라면, 밭에 쇠사슬을 차고 끌려가던 흑인들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브라질 커피의 일등공신은 노예제도였다. 브라질 노예를 다루는 노예상인들 이미지

              모든 경제형태 중에서 노예제도가 가장 값이 싼 노령력 형태였다. 브라질이 열대의 다른 나라들보다 그 노예제도를 더 오래 유지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의 노동력 경쟁에서 이길수 있었다.

              7. 커피의 왕국, 브라질 커피의 탄생

              브라질이 최대 커피 생산국이 되기 위해 정성을 쏟아 붓자, 지구상 그 어떤 나라도 그들과 경쟁할 수가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토질과 기후가 알맞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 문제도 노예제도라는 제도도 제도이지만 또 다른 기이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상 파울로 시내에서 벌어진 낙태 합법화 시위장면)

              1871년 페트로 2세는 레이 도 벤트르 리베르(Lei do ventre livre), 즉 태아의 자유법을 공포했다. 카 톨릭에서 엄격히 제한되던 이혼금지등의 모든 제한을 풀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브라질은 커피의 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렇게 팔헤타의 모험과 브라질의 커피 역사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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